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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보는 경기산하 - 용인] 명문거족 묘역·집성촌 즐비  

[다시보는 경기산하 - 용인] 명문거족 묘역·집성촌 즐비

 ▶서울에서 하루거리이며 최적의 장지로 불리는 용인에서 동족 촌락을 이루며 번성한 것으로 알려진 해주 오씨의 묘역.  

한남정맥의 첫 번째 답사지 안성에서 양지를 거쳐 용인에 이르면 길은 다시 다섯 갈래로 나뉘어진다. 오던 그대로 곧장 큰길을 따라가면 판교를 거쳐 서울 서빙고에 이르고 동쪽으로 가면 양근(楊根)이 나오며 그 사이로는 광주와 이천으로 통하는 길이 나있다. 또 서쪽으로는 수원으로, 서남쪽으로는 진위로 갈 수 있다. 이렇게 사방으로 흩어지는 기점이 되는 곳이 바로 용인시 김량장동에 있는 김량장터인데 과거에는 그 큰길을 '김량대로(金良大路)'라고 하였다.

조선후기 이후 전국 상권을 누비고 다녔던 보부상들의 조직은 특히 견고하기로 유명한데 개성에 착임방(着任房)이라는 총본부가 있었고 이곳 김량장에는 부본부인 차임방(次任房)을 두었다고 하니 이 장이 가지고 있었던 상권의 중요성을 짐작할 만하다.

그런데 용인지역에 관한 이미지로서 누구나 가장 쉽게 떠올리는 것은 분묘(墳墓)다. 그 이유는 조선시대이래 소위 거족(巨族)들에게 사후 안식처로서 각광을 받아온 곳이기 때문이다. 전조인 고려 때는 개성을 중심으로 파주 등 그 주변지역에 귀족들의 무덤들이 분포되어 있었는데 조선에 들어와서는 상황이 바뀌어 그 중심축이 한강 이남으로 옮겨지면서 서울로부터 하루거리인 이곳이 풍수상의 이유와 함께 최적의 장지(葬地)로 인식되어진 것이다.

경기 일대는 이미 조선 이전부터 당대의 거족들 대부분이 연고를 두고 있던 지역으로 조선에 들어와서도 서울의 벼슬살이에서 밀려나면 복직이 될 때까지 잠시 머무는 집인 별서, 즉 별장을 마련하고 있던 곳이다. 그런데 조선후기에 이르면 경기지역에도 이들 중 일부의 자손들이 누대에 걸쳐 인근에 주거지를 확대해감에 따라 임시로 거주하던 별서가 향제(鄕第), 즉 지속적인 거주지로 변화해 가는 현상이 나타난다. 이는 경저(京邸)로의 귀경이나 향제로의 낙향이 모두 어려워진 상황을 반영한 것이다.

용인지역도 이상과 같은 경기 일대의 다른 지역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이었으나 지배층들이 앞서 언급한 이유로 별서보다는 분묘와 종토(宗土)를 주로 두었고 그 결과 다른 지역보다 늦은 조선후기, 또는 말기에 와서야 동족들로 구성된 촌락이 등장하였다.

용인지역에서 동족촌락을 이루어 현재까지 이어져 온 씨족 중에서 가장 오래된 성씨는 죽산 박씨이고 가장 번성한 성씨는 해주 오씨다. 조선 태종 때 포은 정몽주의 묘가 이곳으로 옮겨진 배경에는 포은의 아들 종성(宗誠)의 처가인 죽산 박씨 집안, 특히 장인인 박중용(朴仲容)의 주선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되어 죽산을 본관으로 하는 박씨가 이 일대에 세거한 것은 조선 이전으로 올라간다.

용인 이씨는 용인을 본관으로 하기 때문에 죽산 박씨의 경우와 같이 지역적 연원이 오래되었을 것으로 생각되나 이곳의 중심세력인 중인파(中仁派)의 중인(中仁)은 여말 선초 때 경기도 양주에서 이곳으로 입향하여 그 자손이 퍼졌다. 처가인 죽산 박씨와의 인연으로 조선 초에 이곳에 입향한 연일 정씨 후손들은 모현면 왕산리와 능원리 등지에 80여호를 이루었는데, 이들이 실제 집성촌을 구성하게 된 시기는 17세기 중반 이후로 추적된다. 연안 이씨는 여말 선초의 인물인 이원발(李元發)의 묘가 고산현(高山縣, 완주군 고산면)에서 세종 21년(1439)에 이곳으로 이장하였고, 그 일을 주관하였을 아들 귀령(貴齡·1345~1439)의 묘가 연안 이씨 선산에서 가장 위쪽에 있는 점을 고려할 때 이 때쯤 용인 입향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한양 조씨의 경우 경기도 양주 일대에서 세거하던 이들의 일부가 용인으로 이거한 것은 15세기 중반 이후로 조온(趙溫)의 아들인 육(育)이 용인 이씨의 사위로 들어간 것이 계기가 되었다. 육의 증손이 정암 조광조인데 묘는 수지읍 상현리에 있다. 이곳 한산 이씨는 이색(李穡)의 아들 인재공(麟齋公) 종학(種學·1361~1392)을 파시조로 하는 인재공파(麟齋公派)로 손자인 형증(亨增) 이후 용인으로 이거해 왔다. 이윤형(李允泂)의 누이는 조광조의 부인이고 형증의 손자 이자(李●·1480∼1533)는 조광조와 함께 사은정(四隱亭)이라고 칭하였다.

해주 오씨는 위의 성씨들에 비해 입향시기가 늦은데 비해 거주 호수가 가장 많은 성씨다. '쇄미록'의 저자 오희문(吳希文·1539~1613)은 연안 이씨 이정수(李廷秀)의 사위가 되면서 입향의 계기를 마련하였다. 아들 추탄공 오윤겸(吳允謙·1559~1636)이 경기도 광주에서 용인 모현 지역으로 옮겨 오산리 본동에서 터를 잡은 이후 자손 일부는 서천리로 옮겼고, 이후 또 그 일부가 수원 영통리로 옮겼는데 그 시기는 대략 18세기 말경이다.

이동면 천리 노루실은 우봉 이씨가 용인으로 처음 입향한 곳이다. 입향조 이유겸(李有謙·1586~1663)은 인조반정과 병자호란을 거쳐 호조참의까지 이르고 아들 숙(●)의 공으로 영의정에 추증된 인물이다. 증손인 도암 이재(李縡·1680~1746)는 인현왕후와 민진원의 조카로서, 송준길의 사위인 민유중의 외손으로서, 오두인의 사위로서, 그리고 김창협과 오두인이 사돈이라는 인연 등 노론의 중심인물로서 활약하였고 이후 용인에서는 노루실, 구시울, 통적굴 등에 그 후손들이 세거해왔다.

그밖에도 많은 거족들이 이곳에 터전을 마련하여 선대의 분묘를 모심은 물론 서울과 지방에 거주하는 종중 성원들을 잇는 거점의 역할을 했던 것 같다.

분묘는 과거의 조상과 현재의 자손이 만나는 곳이다. 용인지역의 많은 무덤들은 지금도 그 만남을 주선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기능을 하는 곳은 비단 무덤뿐이 아니다. 심곡서원과 충렬서원도 제향행사를 통해 같은 기능을 하고 용인에 많은 박물관 역시 마찬가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용인지역에서 이와같은 분묘나 서원이나 박물관처럼 우리를 과거와 만나게 해주는 또 다른 매개물을 발견할 수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일기(日記)다.

어쩌다가 우리는 기록을 등한시하는 민족이라는 오명을 쓰게 되었다. 그러나 과거에도 그랬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은 기록 전통을 가지고 있었다. 최근에는 이를 증명하듯 숱한 일기자료들이 발굴되어 중요한 역사사료로 활용되고 있다. 그 중에서 시대가 조선중기까지 올라가는 대표적인 일기로서 이자의 '음애일기(陰崖日記)', 이문건(李文楗·1495∼1567)의 '묵재일기(默齋日記)', 유희춘(柳希春·1512∼1577)의 '미암일기(眉巖日記)', 그리고 오희문의 '쇄미록'을 든다. 그런데 이 네 일기의 저자 중에 조광조와 어울렸던 음애 이자와 해주 오씨 용인입향조인 오희문이 이곳 용인 사람이다. 서울 노원에서 살았던 이문건의 경우도 그의 형 이충건의 묘가 이곳에 있어 용인과 인연이 없지 않다. 일기와 용인의 인연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얼마 전 국사편찬위원회에서는 '관란재일기(觀瀾齋日記)'라는 두툼한 책을 사료총서로 간행하였다. 정관해(鄭觀海·1873~1949)가 쓴 이 일기는 1912년부터 1947년까지 용인과 서울 및 경기도 주변에서 일어난 사건과 일상생활을 매우 상세히 전해주고 있다. 원삼면 문촌리에 전통건조물 3호로 지정된 '정영대고가'가 있는데 건물주인인 정영대씨의 부친이 바로 이 일기의 저자여서 앞으로 그가 이 일기를 통해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더욱 생생한 과거를 전해주리라 기대한다. /경인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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