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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보는 경기산하 - 용인]  

[다시보는 경기산하 - 용인] 죽어 龍仁에서 살아 龍仁으로
용인은 예부터 사람살기가 가장 좋은 고장으로 손꼽혀 온 곳이다.

일찍이 통일신라 시대에는 한주(漢州)의 거서현이었고 고구려 시대는 구성현(駒城縣)이었다. 고려시대는 용구현(龍駒縣)을 거쳐 수원부의 처인부곡(處仁部曲)이었던 처인현을 합치면서 지금의 용인이 되었다. 수천년 전부터 농경문화시대의 주거지였음을 말해주고 있는 청동기시대의 문화유적 '고인돌'도 곳곳에 산재해 있다. 지리(地理) 생리(生利) 인심(人心) 산수(山水)등 4가지 요소를 고루 갖춘 용인은 골이 깊고 농토가 기름져 당대를 풍미하던 인걸이 숱하게 배출되기도 했다.

뿐만아니라 용인은 고려·조선을 거쳐 오늘에 이르기 까지 삼남대로(三南大路)의 관문 역할을 해온 고장이다. 70년대 이후는 '서울시 용인구'라고 할 정도로 서울의 생활권으로 급부상하면서 '사거용인(死居龍仁)'이 아닌 '생거용인(生居龍仁)'으로 변모하고 있다. 그런가하면 경부·영동고속도로가 관통하여 교통이 편리한 지리적 여건은 자연스럽게 박물관과 대학교가 유난히 많은 지역이 되기도 하였다. 경기도 소재의 박물관과 미술관 중 40%가 용인지역에 있음은 이를 말해주는 사례다.

용인의 지세는 한남정맥(漢南正脈) 칠현산에서 다른 한 줄기가 북쪽으로 이어져 안성시 삼죽과 경계를 이루는 구봉산(465m)의 원삼면과 외사면으로부터 시작되고 있다. 산봉우리 두 개가 용의 형상을 하고 있다는 용인시 원삼면과 안성시 고삼·양성면의 경계에 있는 쌍령산(512m)을 거쳐 서쪽으로 머리를 돌려 용인시의 시궁산(時宮山·515m), 부아산(負兒山·403m), 석성산(石成山·417m)으로 이어져 수원의 광교산(592m)과 백운산(560m), 안양의 수리산(474m), 시흥의 오정산으로 다시 이어진다. 그리고 서쪽으로 소래산, 주안산, 원적산과 인천의 서구·북구경계에 있는 계양산(139m)으로 이어지는 한남정맥을 이루며 끝난다. 필자는 최근 안성시 고삼면과 용인의 경계를 이루는 한남정맥을 통과하는 탐사에 나섰다. 납골당 부지로 무분별하게 훼손되는 모습에서 뼈저린 아픔과 함께 다시보는 경기산하의 탐사의미를 되새겨야만 했다. 역사와 문화 현장의 원형보존, 이보다 시급한 과제가 어디있을까. 이론정립은 원형(原形)이란 생명력이 있을때만 가능한 것이 아닐까?

아무튼 '사거용인'이라고 할수 있을만큼 용인의 산하는 명당의 터전으로 대변되고 있다. 풍수지리설에서 갈마 음수형국(渴馬飮水形局)으로 이야기 되는 곳이 이동면 송전리의 산이다. 시궁산에서 흘러나온 산자락 한줄기가 노닥불 고개를 지나 갈매골로 이어져 어비천(魚肥川) 산자락이 끝나는 곳에 뭉쳐있다. 갈매골은 갈매울, 갈마골, 갈마니, 갈마동으로 음이 변하여 산 형국이 목마른 말이 물을 먹으러 내려온다는 풍수지명이다. 어비천, 어비리 저수지의 물을 실컷 마시고 소나무 우거진 솔밭(松田)에 드러누워 있는 형세라는 것이다. 이곳이 명당 터라고 했다.

사거용인이 어디 이곳뿐이겠는가. 선인무수형(仙人舞袖形)이 양지면 평창리산이라고 했다. 신선이 긴 소매옷을 입고 가야금 음율에 맞춰 덩실덩실 춤을 추는 형국이기 때문에 백자천손(百子千孫)이 문과에 급제하여 큰 벼슬과 재상을 끊이지 않고 부지기수로 배출하는 명당이라는 곳이다. 산좋고 물좋은 고장,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용인을 계거(溪居) 지역이라고 했다. 경안천, 탄천, 오산천, 청미천, 진위천의 원류가 모두 용인이라는 데서 실감해 보는 대목이다.

용인문화의 현장은 사거용인 명당풍수에서 보듯 명현, 석학, 충신, 열사의 묘역과 이들이 역사를 이끌어 오는 과정에서 남긴 유물로 가득한 박물관에서 찾아볼 수 있다.

경기도박물관, “1986년 경기도의 향토사료실을 설치한 이래 그곳을 거점으로 10년만에 경기도의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조명할 수 있는 종합박물관으로 다시 태어났다”는 1996년 개관식사는 경기도의 역사와 문화가 기흥읍 신갈에 응축되었음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이동면 서리에 있는 고려시대 백자가마터를 재현한 모형전시에서 용인의 역사와 문화는 고려인의 예술혼을 일깨우며 생명이 이어지고 있음을 느낀다.

명품의 향기가 느껴지는 호암미술관은 민족사를 대변하는 국보와 보물로 가득한 문화예술의 도원경(桃源境)이며, 자동차가 현대생활의 필수품으로 등장하기까지 고되고 먼 여로의 발자국을 되새겨 놓은 삼성교통박물관은 용인의 지리가 문화의 시원(始源)임을 실감케 한다.

태평양박물관의 화장품은 역사이래 여인의 소중한 삶의 공간에 꼭있어야 했던 필수품이다. '연지분 있네만은 눌위하여 고이할꼬…'. 송강 정철의 '사미인곡'이 아니더라도 화장하는 여인의 무아의 경지, 이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여인들의 본능이다. 본능은 생명의 불꽃이기에 사거용인과 생거용인의 가교에서 문화 교류의 역할을 다하는 박물관의 오늘이 미소로 다가선다.

신세계 상업사박물관은 신라 소지왕(서기 490년)때 처음으로 시장(市場)이 열린이래 자본주의 사회의 최대 논리이자 주인이 되어버린 돈의 역사를 담아놓은 곳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고 했던가. 언제나 가진자에게서 나와 가진자의 주머니로 다시 들어가는 지금 세태의 단면을 떠올리게 하는 곳이기도 하다.

용인에는 또 생활문화의 원형인 민속문화를 응축해 놓은 민속촌박물관이 있고, 광솔불에서 토기와 자기를 거쳐 촛대에 이르기까지 역사를 밝혀왔던 등잔들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등잔박물관도 있다.

“쇠를 곱게 꾸며 만든 한자 남짓한 크기에 있는 공 다들여 만들었으니 하나하나 신비롭구나. 나그네 스쳐가듯 빨리 타버리는 촛불이나 너와 더불어 긴 밤을 지새우는 이가 누구이던고….”

촛불과 함께 긴밤 지새우며 그 길었던 역사와 문화를 말하고 있는 박물관의 땅 용인. “우리의 국토는 우리의 역사이며, 철학이며, 시이고, 정신이다”라고 설파한 육당 최남선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용인땅은, 그리고 경기산하는 우리의 소중한 문화자산이다. 사거용인 땅 용인에서 명현, 석학 그 주인공들의 사자후에 귀를 기울여 본다.

“학문하는 사람이 먼저 힘써야 할 것은 의리를 분별하는 것 보다 더 절실한 것은 없다. 사욕(私慾)이 싹트는 것은 모두 이욕(利慾)에서 나오는 것이니 염두(念頭)에서부터 뿌리를 뽑아버려야 한다. 그런 뒤에야 학문에 편안할수 있게 된다.”

지금도 심곡서원(深谷書院) 강당을 쩌르렁 울리고 있는 용인 명현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 선생의 말이다. <강대욱 (경기문화재단 편집위원)>

“토지는 천하의 근본이다. 근본이 잘되고 보면 모든 법도가 한가지로 타당하게 되지 않는 것이 없게된다. 그러나 근본이 문란해지면 모든 법도가 다 따라서 그 타당성을 잃게 된다.”

이는 왕조사회의 정치 경제 사회적 모순을 개혁코자 했던 반계 유형원의 목소리다.

이처럼 용인땅은 사거용인의 화두가 말해주고 있듯이 명현의 생애가 잠든 고장이다. 그러나 그 생애는 시대를 초월하여 현실을 일깨우는 역사의 소리로 늘 우리와 함께 하고 있다는 데서 용인의 역사와 문화는 분출하는 생명력을 지녔다고 할것이다. /경기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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