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봉사지 현오국사탑비(瑞峰寺지 玄悟國師塔碑)
 

지정번호 : 보물 제 9호(국가지정 문화재)
지정년월일 : 1963.1.21
시대 : 고려시대 (명종 15년,1185)
소재지 : 용인시 수지읍 신봉리 산 111
소유자 : 국유
규모 : 비신 높이 1.88m, 너비 0.97m
재료 : 신석-점판암, 대석-화강암
 

광교산 동쪽 서봉사지에 있는 이 비의 전액(篆額)은 증시현오국사비명(贈시玄悟國師碑銘)이다. 비신은 높이 1.88m의 점판암으로, 화강암의 부석위에 세워졌으며, 이수는 없다. 제액의 글자는 지름 약 8cm의 전서이며, 본문은 3.3cm의 해서이다. 행문의 머리에는 <고려국 대화엄 부석사 주지 증시현오국사비명 병서>라 되어 있다. 본문을 지은 이는 이지명이며, 글씨를 쓴 이는 고려 때 초서로 유명한 유공권이다. 비문의 말미에 대정 25년(명종 15년, 1185) 즉, 현오국사가 시멸한 지 7년 후 세운것으로 흥왕사의 대사인 민구가 각자 하였음도 확인할 수 있다.

비석의 조형은 보경사원진국사비, 억정사대지국사비, 보광사중창비와 같이 윗변의 양각을 귀접이한 규형이고, 지대석도 4변을 접었다. 개석과 여러 조식을 생략한, 고려말 석비의 새로운 계류를 형성하는좋을 사례이다.

명문에 의하면 현오국사는 고려 중기의 승려로 휘는 종린, 자는 중지이며, 속성은 왕씨이다. 15세에 불일사에서 수계하고 의종원년(1147)에수좌가 되었다. 명종은 원년(1171) 중추에 그에게 좌세의 호를 내리고 내전에 불러들여 가사 한벌을 하사하였다. 명종8년(1178) 7월에 53세나이, 법랍 39세로 시멸하였다. 명종은 매우 애통해 하며 최광유 등을 보내 국사를 봉하고, 시호를 현오라 하였다. 같은 달 17일에 동림 산기슭에 다비 하였다. 현오국사는 대각국사의 여풍을 이은 대표적인 고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