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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범신의 용인이야기>  

<박범신의 용인이야기>(3)짐꾼같았던 나의 어머니  
가끔 밤중에 어머니를 찾아간다.
글을 쓰지 않겠다고 ‘선언’한 후 3년여, 혼자 용인 ‘한터산방 ’에서 텃밭이나 가꾸고 지낼 때, 날이 저물면 천지간에 마음 둘 데가 없어져 불현듯 길을 나서면 어김없이 발길이 어머니 누워 계신 산속에 닿곤 했다.

‘썩을놈, 오밤중에 뭐허러 왔냐’ 그런 저녁, 어머니 누워 계신 발치에 쭈그리고 앉아있으면 꿈인 듯 생시인듯 어머니 목소리가 환히 들리고 표정도 생생하게 보일 듯 하다.

절대빈곤의 시절, 줄줄이 딸린 자식들 건사하랴, 밭농 사 논농사지으랴, 잘나터진 남정네들 수발하랴, 몸을 열로, 스물 로 나누어 쓰면서도 놀라운 인내와 가슴 뜨거운 사랑으로 우리의 곡절많았던 삶을 지켜온 어머니들이니, 썩을놈 오사할놈 염병할 놈, 욕은 기본이다.

평생 사람이라는 말은 입에 담아본 적 없고 대신 ‘썩을 놈’은 하루에도 몇번씩 입에 담고 사셨지만, 어머 니는 욕만큼 사랑이 뜨거웠고 욕하지 않는 우리는 말과 달리 뜨 뜻미지근한 사랑밖에 없다.

‘엄니 보고싶어 왔어요.’ ‘하이고, 야가 새 바지에 똥 싸겄네.

니 에미 보고싶은 시간 있 으면 감자꽃이나 제때 따주지 않고.

제 밭일도 못허는 놈이 뭐 얻어처먹을게 있다고 오밤중에 여길 와?’ ‘따뜻하고 부드럽게 좀 말씀하세요.’ ‘아따 이놈아, 내가 뭐 기생이냐.’ 이미 흙으로 돌아간 어머니와 작가로서 ‘자기죽음’을 선언하고 홀로 변방에 부초한 중늙은이 아들 사이의 대거리는 매양 이런 식으로 엇나가고 맞물린다.

튼실한 감자를 얻으려면 감자꽃을 제때 따주어야 하는데 그것을 못한 일, 상추 아욱을 솎아주지 않아 저희들끼리 부대껴 썩어가 는 일, 비료를 너무 주어 옥수수잎이 파랗게 타들어간 일, 채소 보다 잡초가 훨씬 웃자랄 때까지 게으름을 피우고 누워 지낸 일 따위도 이상하게 어머니 산소에 가 앉았으면 더욱 선명히 떠오른 다.

독한 세상에 상처받아 어머니한테 일러바칠 일이 태산같은데, 일러바칠 겨를도 없이 내가 잘못한 일만 떠오르니 별일이다.

‘숟가락 꽂아놔도 안 자빠지게, 고깃국 한그릇만 놔다오.’ 살아계실 때의 어머니 말.

당신 제사상엔 이것저것 늘어놓지말고 기름기 자르르 흐르는 쌀 밥에 짝맞추어 건더기가 많아 숟가락 꽂아 놓아도 넘어지지 않게 푼 고깃국 한그릇이면 족하다는 것이었다.

지금도 아내는 어머 니 제사상에 올리는 국그릇엔 반드시 고기건더기를 ‘숟가락 꽂 아놔도 안 자빠지게’ 꾹꾹 눌러 담는다.

그렇게 가난했던 어머니지만 ‘고수레’ 할 때의 밥숟가락은 넉 넉하기 그지없었다.

논두렁 밭두렁으로 내다 먹는 들밥 먹을 때, 아낄 것 없이 고봉으로 한숟가락 푼 밥을 ‘고수레’하면서 논 두렁이나 밭고랑에 내던지는 어머니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아까 운 밥을 왜 그렇게 뚝 떠서 버리느냐고 타박을 하니까 내 머리통 을 쿡 쥐어 박으면서 어머니는 말했다.

‘이놈아, 니 입만 입이냐.

개미도 입이 있고 개구락지도 입이 있고 참새 까마귀도 입이 있는겨.’ 말년에 어머니는 잔뜩 허리가 굽었다.

척추골다공증이어서가 아 니라 평생 너무도 벅찬 사랑의 짐을 지고 사셨기 때문이라.

덴 소 날치듯 해봤자 더 늘어날 것 없는 살림살이에도 줄줄이 딸린 자식은 물론 갖가지 채소와 쌀 보리며 개미 개구리 참새 까마귀 까지 하나도 버리지 않고 다 짐 지셨으니, 허리가 굽지 않고 배 겨낼 방도가 없었을 것이다.

어찌 허리뿐이랴.

‘골이 쏟아지려고 한다.

’ 어머니는 언제나 대님끈으로 머리를 질끈 동여매고 있었다.

두통 약도 없던 시절이니 사시사철 쏟아져 내리는 골을 대님끈으로 겨 우겨우 간수할 수밖에 없었던 어머니.

히말라야에 간 적이 있다.

8000m 연봉들이 뻗어있는 히말라야 높고 깊은 골에선 노새가 유 일한 운반수단이다.

등의 좌우에 무려 60㎏의 짐을 짊어지고 하 루도 쉴새없이 좁고 가파른 산길을 오르내리는 노새들의 등이 짓 물러 터진 것을 보았을 때, 갑자기 잔뜩 허리굽은 어머니가 떠올 라 눈물이 핑 돈 적이 있다.

아, 짐꾼같았던 어머니.

돌아보면 짐꾼같기론 아버지라고 다를게 없다.

아, 라고 탄식하 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뼈아픈 나의 회한 때문이다.

나이 서른이 훨씬 넘을 때까지도 나는 어머니의 짐을 나눠질 줄 몰랐던 것이 다.

멀리 왔을 때 비로소 가까이 보이는 것들이 있다.

히말라야 가파 른 산길을 걷고 있을 때 어느 먼 바다의 복사꽃 피어 있는 굽잇 길을 흐를 때 용인 변방에서 흐드러진 봄을 홀로 엎드려 맞이할 때, 그리고 한밤중 어머니 무덤가 에 앉아 담배 한대 피워물 때, 가족과 이웃들과 짐꾼같았던 어버이의 결핍이 또렷이 보인다.

인당수 바다 위에 떠있는 위태로운 내 조국도 또렷이 보인다.

상대편의 결핍을 이해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감히 사랑이라 부를 것인가.

어머니의 무덤가에서 내가 만나는 회한은 매양 이것이다 .

철들 나이가 되었을 때도 나는 내 결핍이 너무 절실하고 아파 서 어머니의 결핍은 보지도 못했던 것이다.

팔자로 타고난 짐꾼 으로만 어머니를 보았던 내 젊은날에 죄 많을진저.

용인에선 그런걸 생각한다.

사랑의 이름으로, 우리 곁에서 누군가 일생동안 짐꾼처럼 사는 것을 방치한다면 그것은 죄이지 사랑이 아니다.

가족이라면 더욱 더 그렇다.

아름다운 그 무엇이, 파죽지세로 세계화되는 지금, 이땅에 남아 있는가.

‘독립하고 싶지만 경제적으로는 독립하고 싶지 않다’고 어떤 젊은이들은 말한다고 한다.

스물이 훨씬 넘 은 아들 딸에게 일일이 밥상까지 차려바치는 대신 머리색깔, 옷맵 시, 야간통행까지 간섭하고 지청구하려는 어버이나, 간섭은 받고 싶지 않으나 이의 과실은 언제까지든 나눠 먹으려드는 젊은이나 알고보면 피장파장이다.

전통적이고 수직적인 가족구조나 인간관 계는 이미 해체되었다.

문제는 그 관행이 갖고 있는 형식구조의 그늘이다.

‘썩을 놈아, 담배 너만 피우냐.’ 어머니가 또 뚝배기 깨지는 소리를 하신다.

나는 황급히 새담배 에 불을 붙여 어머니 무덤의 풀섶에 꽂는다.

이제 비로소 오랜 짐꾼으로부터 벗어난 어머니가 맛있게 궐련을 피우는 것을 나는 본다.

또 한번 눈물이 핑 돈다.

/박범신 소설가·명지대 교수 -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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