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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7/23(화)
죽전주민들 “대지山 난개발 막아라”  

[지방속으로] 죽전주민들 “대지山 난개발 막아라”  (2002.07.22)















▲사진설명 : 19일 오전 ‘죽전 쪽 대지산을 난개발로부터 구해내려는 시민의 모임 ’소속 주민들이 대지산 공사현장에서 공사 중지와 현장 복원 요청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 르포 지방속으로

굵은 빗줄기가 쏟아지고 있던 지난 19일 오전 11시. 경기도 용인시 죽전1동 LG트윈빌아파트와 현대빌라트 앞 택지개발현장에 모인 아파트 주민 100여명이 걱정스럽게 공사를 지켜보며 의견을 나누고 있었다. 아파트 앞길에서 위편 죽전~광주(廣州)간 도로까지 폭 400여m 정도의 경사가 급한 산비탈에 굴착기들이 오가면서 성토(盛土)작업을 벌이고 있었다. 벌목된 아름드리 나무들의 밑둥이 맨살을 드러낸 땅바닥 곳곳에 흩어져 있었고, 개울로는 뻘건 흙탕물이 쉴새없이 흘러내렸다.

“이곳 대지산(大地山·380m) 자락의 울창한 숲들이 모두 베어져 나갔습니다. 소나무고 밤나무·잣나무고 가리지 않고 모조리 잘라냈습니다. 그 자리에 마치 폐토장이 된 듯, 흙을 마구 쏟아서 계단식 택지를 만들고…. 우기(雨期)를 앞두고 위험천만하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이렇게 마구잡이 난(亂)개발로 자연을 훼손하는 일이 언제까지 되풀이돼야 하는지 참으로 걱정됩니다.” ‘죽전쪽 대지산을 난개발로부터 구해내려는 시민의 모임’ 대표 한준석(韓準石·72)씨의 목소리는 분노에 차 있었다.

은퇴한 뒤 분당에서 살던 한씨 부부는 작년 10월 평온한 노후를 보낼 새로운 안식처를 물색하던 중 죽전 LG트윈빌아파트를 찾았다. 아파트 뒷산을 둘러보던 한씨는 경탄을 금치 못했다. 눈앞에 펼쳐진 대지산의 경관은 자연 그대로를 보존하고 있는 모습이었기 때문. 푸른 소나무 숲 사이로 호젓한 오솔길이 나 있었고, 맑은 개울물이 흘렀다. 가을이면 붉게 물든 단풍들. 한편에서 뻐꾸기와 소쩍새가 한가로이 지저귀는 풍경은 선경(仙境)을 연상시켰다.

그러나 지난 4월 이곳으로 이사온 한씨는 또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택지개발’의 명분을 내건 굴착기가 자연을 온통 깎아내고 있었던 것. 한국토지공사는 지난 3월부터 이곳 일대 11만5000㎡(3만5000평)에 15~16층의 고층 임대아파트와 도시형 공장아파트 등을 짓기 위한 토목공사를 시작했다. 경기도 문화재자료 92호 경주 김씨 남곡 김의(南谷 金 ·1572~1649)선생 묘역은 주변의 나무들이 모두 베어져 마치 섬처럼 남았다. 문화재로 지정되면 최소한 주변 자연경관은 보존될 것으로 믿어왔던 주민들은 배신감마저 느낄 정도였다. 매일같이 계속되는 공사장의 소음 속에서 대지산은 사라져가고 있었다.

“오염된 공기나 물은 오염원을 없애면 복원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한번 자연을 훼손하면 영영 복원이 불가능한 일인데…. 서울시는 남산 경관을 부분적으로 가린다는 이유로 1994년 2300억원을 들여 남산 외인아파트를 철거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죽전 대지산에서는거꾸로 택지개발로 인해 훨씬 더 큰 자연파괴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한씨는 인근 아파트 주민들과 상의하기 시작했다. LG트윈빌과 현대빌라트에 사는 주민들은 “더이상의 주변 녹지 훼손은 없다던 토공 간부의 약속이 식언(食言)이 돼 버렸다”며 분노하고 있었다. 주민 백재원(白在媛·여·55)씨는 “1999년 토공에서 주민들을 상대로 설명회를 할 때와 지난 3월 토공 관계자를 만났을 때의 말이 달랐다”며 “주민들에게 민원을 내라는 식으로 자꾸 시간을 끄는 것 같다”고 말했다. 주민 김양자(金良子·여·59)씨도 “이렇게까지 원칙도 없고 지형을 생각하지도 않는 마구잡이식 공사가 어디 있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주민들은 마침내 행동에 나서기 시작했다. 이달 초 ‘죽전쪽 대지산을 난개발로부터 구해내려는 시민의 모임’을 결성했다. 작년 5월 시민단체와 주민들이 건설교통부로부터 대지산의 일부인 8만여평에 대한 녹지지정 약속을 받아낸 지 1년여 만의 일이었다. 보존대상에서 제외된 지역 아파트 주민들이 주도하는 ‘대지산 살리기 운동의 2라운드’가 시작됐음을 알리는 신호탄이기도 했다.

이들은 용인시와 경기도·토공을 상대로 자료 요청과 청원에 나섰고, 주민들을 상대로 서명운동을 벌였다. 일부 주민들은 “되지도 않을 일에 왜들 그렇게 나서는가”라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토공이라는 거대 공기업을 상대로 이미 시작된 택지개발을 백지화(白紙化)하고자 하는 것이 얼핏 무모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명에 참여한 사람들은 금세 300명을 뛰어넘었다. 수십 차례 수지출장소와 용인시청, 토공 감독사무소를 분주히 오갔던 칠순의 한씨가 대표를 맡았다. 경기도의회 우태주(禹泰周·54) 의원과 용인시의회 조선미(趙善美·여·34) 의원도 팔을 걷어붙이고 동참했다.

“이미 개발 제일주의 시대는 지났습니다. 파괴된 산야와 하천을 복원하고 자연을 알뜰하게 지켜가는 것이 급선무임을 깨닫고 실천할 시대가 온 것이지요.” 한씨는 고층아파트를 그렇게 많이 짓던 서울시도 이제는 청계천을 복원하는 등 자연보호 우선 정책으로 선회하고 있다며 용인시도 ‘난(亂)개발’이라는 예전의 굴레를 벋고 자연을 보전하는 선진적인 도시로 변화할 계기가 온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건교부와 토지공사에 죽전 택지개발을 반대한다는 의견을 제출해 왔던 용인시는 정작 힘이 없었다. 한씨는 열쇠를 쥐고 있는 토공측이 사업허가시의 토목공사 기본 설계도에 대한 정보청구를 계속 거부하고 있다며 답답해 했다.

주민들의 요구는 “산비탈의 훼손된 자연을 회복시키라”는 것이다. 이곳 임야의 택지화를 중단하거나 계획을 대폭 조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남곡선생 묘역의 남쪽과 서쪽의 개울을 그대로 보전하고, 벌목한 부분도 복원해야 한다는 것. 지방문화재 지정 지역 밖의 택지화 계획도 건물 높이와 건폐율과 용적률 등을 전원도시답게 낮추어 줄 것을 주민들은 요구하고 있다.

한씨와 주민들은 운동을 펼치는 과정에서 ‘이 운동이 혹시 이곳 주민들만이 좋은 환경을 누리려는 이기심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가’하고 스스로에게 묻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은 죽전만의 문제도 아니고, 용인만의 문제도 아니었다. 택지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원칙 없는 난개발이 계속되는 이상 ‘우리의 소중한 자연은 전국 어느 곳에서도 또다시 훼손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한씨는 자연보호는 어느 특정지역만을 위한 일이 아니라며 이렇게 다짐했다.

“이 산지가 복원이 되고, 전국에 난개발 시대의 종식(終熄)을 알리는 역사적인 계기가 되고자 합니다. 이곳에 ‘자연파괴 저지 투쟁 전승비’를 세울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兪碩在기자 karma@chosun.com ) ----------------------------------------- ◆대지산 작년 시민들 힘으로 8만평은 녹지보전 ----------------------------------------- 용인시 죽전지구 대지산 일대는 주민과 환경단체가 1년여에 걸친 투쟁으로 28만㎡(8만5000평)의 녹지보전을 이뤄낸 곳이다. 죽전지구 108만평이 택지개발지구로 지정된 것은 1998년 10월. 경주 김씨 대지종회 등 토지 소유자들이 2000년 7월 녹지 훼손을 막기 위해 건교부에 그린벨트 지정을 요구했다. 이어 환경정의시민연대와 용인YMCA 등 시민단체가 ‘용인보존공대위’를 결성, 주민들을 대상으로 ‘땅 한 평 사기’ 모금운동을 벌여 임야 100평을 사들였다. 내셔널 트러스트(국민신탁) 운동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토지공사가 강제수용 절차를 밟자, 환경정의시민연대 박용신(朴勇信·34) 부장이 작년 4~5월 17일 동안 ‘나무 위 시위’를 벌이는 등 우여곡절 끝에 건교부의 녹지 조성 약속을 이끌어냈다. 보전지역은 지난 3월부터 시민참여형 자연공원으로 조성되고 있다.

이번에 LG트윈빌과 현대빌라트 주민들이 복원을 요구한 지역은 공동주택과 도시형 공장용지로 지정돼 녹지보전 지역에서 제외됐던 곳. 토공 죽전사업팀의 관계자는 “이미 1999년 개발계획 당시 도시형 공장부지 용도로 잡혀진 곳으로, 2000년 9월엔 환경영향평가 협의가 끝나 큰 문제가 없는 곳”이라며 “공사를 하기 위해선 벌목을 할 수밖에 없고, 수해 우려에 대해선 최대한 안전하도록 공정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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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료들, 현장 골짜기까지 직접 봐야”
‘대지산 살리기 모임’대표 한준석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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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전쪽 대지산을 난개발로부터 구해내려는 시민의 모임’의 대표를 맡고 있는 한준석씨는 주일공사, 해운항만청장 등을 역임했다. 한씨는 청와대 경제담당비서관으로 재직할 때였던 1965년 자칫 국토의 ‘환경파괴’로 이어질 뻔한 정책을 막았던 비화(秘話) 한 토막을 지금도 가슴 속에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당시 이후락(李厚洛) 대통령 비서실장은 좁은 국토의 효율적인 이용을 연구한 끝에 대만처럼 전 국토를 계단식으로 개간하는 안을 내놓았다. 한씨는 대통령 결재까지 받은 이 안을 “비오면 산사태 나고, 산이 망가지면 국토가 망가진다”며 뜯어말려 간신히 철회시켰다.

“이미 결정된 일이라도 처음부터 잘못됐으면 잘못을 지적하고 고쳐야 합니다. 청와대든 국회든 건교부든 대지산 현장을 골짜기까지 모두 지켜 봐야 합니다.”

편안한 노후생활을 접고 공사 현장을 지켜보던 그의 얼굴엔 지친 기색이 없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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